나이가 들면서 부실해지는 아랫도리를 그냥 놔둘 수는 없다. 장어에 강아지에 까마귀까지 걸어다니는 것, 기어다니는 것, 날아다니는 것 온갖 잡것들을 잡아먹어 봐도 신통치가 않다. 운동이 최고라지만 힘들고 땀 질질 흘려야 하니 꾀부리다 밤이 되면 낮에 운동이라도 했어야 한다고 후회한다. 그러다 아침이 되면 또다시 미련을 떤다. 한 방에 벌떡 일으켜 세울 방법을 고민하다 결국 그토록 가고 싶지 않은 비뇨기과를 생각해 본다. 자신도 답답하지만 아내 볼 면목도 없고, 무엇보다 아내가 무시하지 않나 전전긍긍하는 자신이 꼴 보기 싫어진다.
진료대기실 풍경은 가관이다. 서로 검증되지 않은 비법이라도 나누면 좋으련만, 교도소에 처음 들어간 사람들처럼 서로 얼굴 팔릴까봐 싫어 죽는다. 돌돌 만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이름이 불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면 좀 나아질까 싶지만 거기도 피곤하긴 마찬가지다. 오줌 받아와라, 피 뽑자, 그 다음은 바지를 까고 음경을 보여줘야 한다. 아무리 의사 앞이라도 좀 거시기하다.
일단 보여주면 리지스캔(컴퓨터 발기력 측정검사), 혈관확장제 투입 후 발기 유지시간 측정을 하는 약물유발 발기검사, 정액처럼 끈적거리는 말간 약을 발라 초음파 검사까지 한다. 그리고 기다리는데 결과가 지옥일까 봐 조마조마하다.
이때 가장 듣기 좋은 말은 ‘약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의사의 한마디다. 혈관이 덜 맛이 가면 약 처방을 받는 행운이 따른다. 약으로 안 되면 혈관조영술이나 해면체 내압검사를 추가로 해야 한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처방전을 갖고 약국에 가서 약을 사야 하는데 여기서 또 한 번 죽을 심정이다. 시골 간이버스정류장 차표 파는 데처럼 반달모양 돈 넣는 구멍만 빼꼼히 뚫려 있는 약국이 있으면 참 좋으련만. 약사가 얼굴이라도 뚫어지게 쳐다볼라치면 땅속으로 쏙 꺼지고 싶어진다. 산 넘어 산이라고 그렇게 어렵게 산 후 이걸 또 언제 어떻게 먹어야 할까, 과연 발기가 될까, 부작용이 있다던데 그것 한번 해보려다 죽는 건 아니겠지,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요리 재고 조리 재다 너무 간절한 마음에 마침내 먹으려 할 때, 성관계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예상치 못한 순간 아내가 하자고 신호 보낼 때 약을 주섬주섬 찾아 먹으려니 분위기 깰 것 같고, 약 먹는 걸 들킬까 봐 또 맘을 졸인다. 아내가 우습게 생각하는 것 아닐까 걱정도 되고 물과 함께 약을 먹으려면 진짜 환자가 된 기분이 들어 자존심이 상한다. 아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잽싸게 먹고 시치미 떼려고 하지만, 타이밍 맞추기가 쉽지 않다. 성적으로 흥분해서가 아니라 들킬까 봐 두근두근거린다. 곧 죽어도 약 먹고 세웠다는 말은 안 듣고 싶은 것이 한국 남자들의 자존심 아니던가!
발기부전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는 남성들 경험담에 따르면 퇴근 후 집에 가는 차 안에서, 파트너가 샤워할 때가 약 먹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란다. 하지만 이렇게 타이밍을 맞추려다 보니 때로 물이 없다. 음료수나 수돗물에 먹기도 하고 가끔은 술과 함께 먹거나 침으로 씹어 삼킨다는 이도 있다. 그런데 세상 참 좋아졌다. 요즘 아내 모르게 감쪽같이 먹는 약도 나왔다. 물 없이 입안에서 살살 녹는 완전히 새로운 제형의 발기부전치료제다. 자존심 다치지 않고 싶은 남자들의 마음을 귀신같이 헤아렸다. 누가 생각했는지 참 잘한 짓이다. 이럴 때 아내가 할 일은 딱 한 가지! 모른 척, 안 본 척, 딱딱해진 거시기를 쓰다듬는 것뿐이다.
[성경원 한국성교육연구소장] (www.sexeducati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