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옛부자들의 돈 버는 원칙
상업이라는 것은 본래 돈을 버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이익만 남길 수 있다면 뭐든 하려는 것이 일반적이다. 돈을 벌려면, 자존심도 버리고 간도 쓸개도 내어 놓아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맹자는 "사람이 하지 않는 것이 있은 뒤에야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 않는 것'이란 곧, 지조요 원칙이다.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해서 아무 방법이나 쓰지 않는다는 원칙 말이다. 오늘은 이 원칙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고, 그렇게 해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떵떵거리고 대접받으며 살고 싶은 마음이야 다 똑같다. 하지만, 어떤 방식과 어떤 원칙으로 그것을 이루었느냐에 따라, 모래 위에 세운 집이 될 수도 있고, 안에 든 것은 없이 겉만 어마어마하게 큰 빈집이 될 수도 있다. 그럼 어떤 원칙을 세워야 할까? 어떤 원칙을 지킨 사람이 부자가 되었을까? <삽교별집> 넷째 권에는, 콩 때문에 큰 부자가 된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영조 초기, 충주에 사는 양민 황희숙이 어느 날, 한양에서 돈 만 냥을 가지고 내려온 한 노인을 만났다. 그 노인은 그 돈으로 콩 2천 말을 사들여 황희숙에게 맡겼다. 때마침 큰 풍년이 들어, 콩 한 말이 겨우 5문이었다. 그 노인은, 흉년이 들더라도 경솔히 팔지 말고, 반드시 자신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팔라면서, 이름도 말해 주지 않고 떠났다. 다음해에 흉년이 들었고, 그다음 해에도 크게 가물었다. 황희숙의 집도 가난하여 굶기를 밥 먹듯 했으나, 노인과 한 약속을 지켜 그 콩을 내다 팔지 않고 간직했다. 그 다음 해에는 비바람이 적절해 보리가 잘 자랐으나, 보리가 익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굶어 죽은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다. 이웃들이 몰려와 "그 노인이 지금까지 안 오는 것을 보니, 반드시 죽었을 것일세. 그 사람 기다리다가 이웃들 다 죽게 생겼네" 하며 황희숙을 꾸짖고는, 스스로 종이에 '콩 1되에 백문'이라고 쓰고 나서, 자신의 이름과 '돈 얼마, 콩 얼마' 하고 적고는, 도끼로 자물쇠를 부수고 콩을 꺼내가 버렸다. 600명 남짓 되는 사람이 그렇게 하자, 순식간에 20만 전이 생겼다. 어쩔 수 없었으나, 그가 오건 안 오건, 그에게 후손이 있건 없건 그를 위해 일을 투명하게 처리하고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한 황희숙은, 그 돈으로 땅을 사들여 계약서를 만들면서 많은 사람을 불러 증인으로 삼고, 이름 쓰는 자리는 비워두었다. 늘 "이것들을 어찌 감히 내 것이라 할 수 있으랴" 하면서 황희숙은 그 뒤로 40년 남짓 동안이나 그 노인이나 그 자손을 기다렸다. 하지만 끝내 그들은 오지 않았고, 황희숙은 결국 갑부가 되었다. 이 이야기를 적어 놓은 삽교 안석경은 이렇게 평가했다. "일찍이 돌아가신 내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그의 행실은 이야기할 것도 없고, 재물도 지키지 못한다'고 하셨다. 황희숙은, 빈손이었다가 마침내 마을 갑부가 되었으니, 이것은 오직 신의가 있던 때문이다." 물론, 콩을 3년이나 우두커니 갖고만 있는 게 잘한 짓이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장 좀 썼다가 곧 채워 넣지' 했더라면 그 콩을 그 3년 동안이나 쌓아놓고 있지 못했을 것이요, 그랬더라면 그 해에 돈도 벌지 못했을 것이다. 남과 한 약속을 사사로운 욕심으로 마음대로 바꾸지 않고 끝까지 지키는 그 원칙을 눈여겨보자. 한 번 한 약속은 어느 때나 지키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재물도 지킬 수 있다. 정당한 도리로 이익을 취하라 같은 책, 같은 권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선대의 유산이 많아 부자가 된 한양 사람 하나가, 자신도 장사를 해보겠다며 10만 전을 가지고 강경으로 갔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 선박이 즐비하고 사람과 말이 구름처럼 몰려다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평생 자기 손으로 뭔가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길가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데, 허름한 옷차림의 절름발이 하나가 옆에 앉아 쉬는 것이었다. 부자가 "강경이 도회지라는 말을 듣고 돈을 가지고 왔으나, 어디에 물으며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르겠소" 했더니, 이 절뚝발이는 자신의 집으로 안내하면서, 시장을 잘 관찰하다가 남들이 사지 않는 것을 사 보라고 했다. 부자는 절뚝발이 집에 머물다가, 10만 전을 절뚝발이에게 주면서, 알아서 물건을 사고팔아 보라고 하고는 한양으로 돌아가 버렸다. "당신이 속이지 않는다면 내가 여기 없어도 될 것이요, 또 당신이 만약 나를 속이려 한다면 강경에 있은들 못 하겠소?" 하면서 말이다. "언제 다시 오시렵니까?" "글쎄…. 성 밖을 나서 본 적이 없으니 내가 뭐 하러 또 오겠소? 이번 걸음은 한 번 시험해 본 것뿐이었소." "그래도 저는 꼭 찾아뵙겠습니다." 절뚝발이는 연초, 즉 담뱃잎이 흔하나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것을 보고, 10만 전으로 그것을 모두 사들여 잘 보관했다가, 다음해에 열 배로 팔아 100만 전을 벌었다. 부자에게 줄 본전과 이자로 20만 전을 떼어두고 자신은 나머지 80만 전으로 논밭과 집 따위를 장만해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는 서울로 그 부자를 찾아가 돈을 갚았다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지만, 부자가 된 이야기를 보면 대체로 이런 식이다. 남들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속여서 자기 이익을 구할까 하는 것만 생각할 때에도, 신의를 바탕으로 한 윤리를 실천해 끝내 부자가 되었더라 하는 것이다. 참으로 지켜야 할 것, 참으로 얻어야 할 것은 상대방에 대한 신의요, 신의를 지킬 수 있는 상대방이다. 부는 그 다음에 온다.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듯, 급할 때 약속을 해 놓고 나중에 그 약속을 지키려 하면 아까운 경우가 많다. 특히 금전적인 약속은 더욱 그러하다. 한때의 속임수나 발뺌으로 당장 이익을 거둘 수 있는 듯한 경우가 많다. 신의를 목숨처럼 지키고 도리를 지키는 사람이 성공한다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 그래도 정당한 도리를 지키며 사는 것이 궁극적으로 내게 이익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어찌 부인할 수 있으랴? 하루는 풍랑이 일어 물에 빠졌는데, 마침 어부가 가까이 있는 것이 보여 소리를 질렀다. * 그래도 목숨이 먼저다 <열하일기> '옥갑야화'에 있는 이야기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청나라 연경에 들어간 조선의 한 역관이, 자신이 늘 거래하던 단골 주인을 보자마자 통곡했다. 장사 밑천으로 몰래 가지고 오던 은을 몰수당했으니 이젠 살길도 없고 가족들 볼 면목도 없다면서, 죽어 버리는 게 낫겠다고 칼을 뽑아들었다. 주인은 급히 말리며, 잃어버린 돈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삼천 냥이라고 하니 곧 그만큼 내어주며, "사람이 세상에 난 것이 중요하지 돈이 없는 게 중요하겠소? 이걸로 한 다섯 해쯤 돈을 벌어 보시오. 그때 가서 본전이나마 갚을 수 있으면 갚으시고" 했다. 돈을 얻으려고 연극을 했던 그 역관은, 받은 돈으로 무역을 해서 큰돈을 벌었다. 그러나 그 뒤로 다시는 중국에 발길을 하지 않았고, 자신이 죽었다는 거짓 소식이 그 주인에게 전해지도록 했다. 그랬더니 주인은 오히려 불쌍히 여기며, 그 소식을 전한 이에게 돈을 주면서, 죽은 영혼을 위해 제사나 올려달라고 했다. 전해 받은 사람이 돌아와 보니, 그 역관이 급살을 했더라 한다. 지금의 이익을 위해 살다가 천벌을 받은 듯 죽고만 역관을 탓하는 것은 잠시 미루어 두고 그 중국의 주인을 보자. 그 역관과 자신이 무슨 관계가 있더란 말인가? 자기 친척도 아니고, 더구나 남의 나라 사람인데 그 목숨도 살리고, 게다가 죽었다는 소식에 슬퍼하며 제사 비용까지 챙겨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돈 벌기는 누구에게나 어렵다. 힘들게 번 돈이니 누구나 되도록 안 쓰고 싶어한다. 더구나 그것이 당장 자신의 필요와 상관없는 일이고, 꼭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생명 문제를 늘 돈보다 먼저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장사를 해도 되는 사람이며, 돈을 벌어도 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중국의 가게 주인이 몇 해가 지나도 한결같이 장사를 잘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 덕일 것이다. * 함께여야 의미가 있다 중국 전국시대 위문후 때에 재상으로 활동했으면서도 재력가로 유명했던 백규라는 인물이 있다. 사마천은 <사기> '화식열전'에서 그의 경제 원칙을 소개하면서, "음식을 박하게 하고, 욕구를 참으며 옷을 절약하고, 일하는 종들과 고락을 함께하며, 시기에 맞게 나아가는 것을 마치 맹수의 움직임같이 하였다"라 했다. 금욕하며 절약하는 것은 이미 많이 이야기했는데, 특별히 여기에서는 '일하는 종들과 고락을 함께' 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고자 한다. 사람이 일정한 크기가 넘는 일을 하려면 반드시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게 되어 있다. 그때 그들을 도구로 다룰 것이 아니라 즐거움과 어려움을 함께하여 같이 부유하게 되겠다고 하는 마음 자세가 있었기에 백규는 그토록 많은 부를 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조 때에 규장각 교리를 했던 성대중이 쓴 <청성잡기>에는, 영남의 지주들이 자기 땅을 소작농에게 줄 때 암암리에 지키는 세 가지 원칙을 소개한 부분이 있다. 세 원칙 가운데 하나가 '양반에게 주지 말 것'이다. 왜 양반에게는 소작을 주지 말라고 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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