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상대방의 약하고 아픈 곳을 골라 타격하라
상대방의 약하고 아픈 곳을 골라 타격하라 ^ Gabbu
* 손빈과 방연의 잘못된 만남 *
싸움은 물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 적이 거세고 맹렬하며 수가 많을 경우에는 막힌 물을 터서 사방으로 흐르게 하는 것처럼 적의 전력을 분산시킨 후 약화된 적을 포위하여 섬멸하면 된다. 즉 적의 병사와 군마가 흩어지고 식량이 줄어들면, 그 기회를 포착해서 아군 병력으로 방벽을 만들어 포위하여 섬멸하면 된다.
손자는 다음과 같이 충고하고 있다. 엉클어진 실을 풀려면 주먹으로 다져서는 안 되고, 손으로 천천히 세심하게 만져야 한다. 엉킨 실처럼 분쟁이 생겼을 때는 싸우는 무리들 사이에 들어가 같이 싸우면 안 된다. 양쪽 집에 불을 질러 버리면, 적은 자연스럽게 갈라지게 될 것이다.
기원전 354년 어느 날, 위 나라 혜왕은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 벽에 붙은 지도를 보았다. 그런데 마침 그의 눈에 들어온 지역이 중산이었다. 중산은 과거에 위나라 영토였으나 지금은 조나라 영토가 되었다. 자신의 영토를 빼앗긴 걸 생각하니 혜왕은 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곧 방연을 불러들였다.
“조나라에 빼앗긴 중산을 생각하면 밤에 잠에 오질 않소. 방 장군! 그대에게 전차 5백 대를 줄 테니 중산을 찾아올 수 있겠소?”
“전쟁을 하려면 중산을 칠 게 아니라 조나라 왕의 노모가 거처하는 수도 한단을 직접 치십시오. 제가 군대를 이끌고 가서 한단을 공격해 폐하의 한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오 좋소 그럼 곧 출정하시오. 정말로 한단을 빼앗아 온다면, 그대를 조나라 성의 서장으로 삼겠소.”
방연은 전차 5백대를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출장했다. 산이 나타나면 기어오르고, 강이 나타나면 헤엄쳐 건너고, 나무가 무성한 숲이 나타나면 벌목을 하면서 한단성을 향해 나아갔다. 위나라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조나라 왕은 재빨리 제나라에 원군을 요청했다. 그리고 만약 위나라의 포위를 풀어 준다면 중산을 제나라에 주겠다고 약속했다. 제나라 위왕은 그 제의에 동의했다. 위왕은 전기를 장군으로 삼고, 방연과 라이벌이었던 손빈을 군사로 삼아 군대를 이끌고 출격하도록 명령했다.
손빈은 원래 방연과 동학이었다. 동학이라면 학업성적에서 한쪽은 뛰어나고 다른 한쪽은 뒤떨어지게 마련이다. 손빈은 반에서 줄곧 상위권을 차지했다. 방연은 아무리 노력해도 손빈을 따라잡지 못했다. 게다가 손빈은 저명한 잡지에 논문을 여러 편 발표하여 명성도 얻은 상태였다. 당시 위나라 왕은 후한 예물로 손빈을 초빙했고, 그때 마침 방연은 위나라 왕을 섬기고 있었다. 방연은 자신의 학문이나 무공실력이 손빈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며, 외모조차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될 정도로 울다가 결국 소인배들이나 쓰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는 손빈에게 간첩죄를 뒤집어씌워 다리를 자르고 얼굴에는 ‘쇠’자를 새겨 넣어서 걷지도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창피해서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후에 손빈이 미친 척하자, 제나라 사신이 ‘무적천장술’로 그를 감옥에서 구출해 내어 간신히 제나라로 데려왔다. 이상 손빈과 방연 두 사람의 관계를 간략히 소개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전기와 손빈은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와 조나라의 경계 지역에 들어섰다. 이때 전기가 조나라를 포위한 위나라 군대를 직접 공격하려고 하자, 손빈이 ‘Stop!’하고 만류했다. 손빈은 지금 위나라에 정예병들이 없을 터이니, 위나라 수도 대량을 친다면 방연이 군대를 이끌고 지원하러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단성의 포위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기는 손빈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은 손빈의 말대로 진행되었다. 결국 방연은 수도를 빼앗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포위를 풀고 위나라로 향했다. 그러나 복병을 만나 곤욕을 치렀고, 패잔병 몇 명을 데리고 퇴각하여 가까스로 위나라로 돌아갔다. 적의 핵심을 곧바로 치고 들어가는 위위구조의 계책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3년 후, 제나라는 위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출정했다. 당시 한나라를 공략하고 있던 방연은 깜짝 놀라 군대를 끌고 돌아와 제나라 군대와 맞섰다. 그러나 방연은 이번에도 손빈의 계략에 말려들었다. 손빈은 밥을 짓는 흔적을 남기되 매일 매일 숫자를 줄여 군사들이 몰래 도망가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려 적을 방심하게 만들었다. 또한 적을 쉽게 공략할 수 있는 장소로 유인하여 큰 나무에 ‘방연이 이 나무 아래서 죽었다.’는 글자를 남겨 적을 자극하고 이성을 잃도록 만들었다. 계략에 휘말려서 크게 패한 방연은 망신스런 꼴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서 마침내 자결하고 말았다. 이후 손빈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고, 그의 병법은 세상에 전해졌다. 아마 방연은 죽기 전에 이렇게 외쳤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바탕 혈전을 벌이려고 왔는데, 너희들은 치사하게 전쟁을 피했구나!
그토록 음험한 계책을 사용하다니………”
** 충왕 이수성의 ‘위위구조’ ** 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한다.
중국 역사상 여러 차례 농민봉기가 일어났지만 대부분은 그 우두머리가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지도자가 평소에 많은 고통과 멸시를 받으며 살아왔을수록 작은 승리에 도취하여 성급하게 그 승리의 결실을 맛보려다가 결국 내부의 분열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태평천국 후기가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당시의 지도자들은 여러 차례의 승리로 그들을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고관대작처럼 화려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왕의 칭호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홍수전은 여러 차례의 승리로 오랫동안 실질적으로는 왕 노릇을 하면서도 왕의 칭호를 갖지 못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어느 날, 어떤 이가 ‘백미응왕’으로 부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건의했다. 그러나 산적 같은 느낌이 드는 ‘백미응왕’보다는 ‘사대천왕’이라는 호칭이 마음에 들어 앞으로 그렇게 부르도록 명령했다.
이후 태평군의 내분이 가속화되자, 혁명군의 역량이 크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1860년에 청나라 군대는 화춘을 파견하여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태평천국의 수도인 천경을 공격하도록 했다. 천경은 바로 지금의 남경이었다. 청나라 군대의 전투력은 별 볼일 없었지만, 병사의 수는 많았다. 화춘은 병사들로 천경성을 에워쌌고, 천경성은 찐빵의 소가 되어 버렸다. 홍수전은 보유하고 있는 양식으로 한동안 버틸 수는 있었지만, 청나라 군대에 계속 포위되어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대천왕’ 홍수전은 마음이 조급해져서 부하들을 불러 적을 물리칠 대책을 논의했다. 그러나 이런 급박한 현실 앞에서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때, 젊고 혈기왕성한 충왕 이수성이 앞으로 나와 홍수전에게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지금 청군은 병사와 말이 숫자상 우세하여 무리하게 대적하면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사대천왕께서 제게 2만 명의 병사를 주신다면, 밤을 틈타 포위를 뚫고 적군이 식량을 보관하고 있는 항주를 습격하겠습니다. 적이 이 사실을 알고 항주로 추격해 왔을 때, 이미 식량들은 거의 불타 없어진 후일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적은 항주로 지원병을 보낼 것입니다. 그때 천왕께서 기회를 포착해서 포위를 뚫으시면 되고, 저 역시 천경으로 다시 돌아올 것 입니다. 양쪽에서 협공을 하면 우리가 청나라 군대로 찐빵을 만드는 격이 되고, 그들은 찐빵의 고기소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청나라 군대의 포위를 쉽게 풀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이때, 시왕 이현세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도 부대를 이끌고 나가 충왕을 도와 싸우겠다고 했다. ‘사대천왕’ 홍수전은 용맹무쌍한 두 장수가 친히 정예병을 이끌고 포위를 뚫게 되면 승리는 당연히 자신들의 것이 되리라 확신하고 정말 훌륭한 계책이라고 칭찬했다. 이것이 바로 ‘위위구조’ 계책이었다.
청나라 군대는 절대적으로 우세한 병력을 믿고 천경을 얻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며 방심하고 있었다. 이해 정월 초이튿날 한밤중에 이수성과 이세현은 각각 부대를 통솔하여 칠흑 같은 어둠을 틈타 적의 봉쇄가 비교적 약한 동남쪽 성 모퉁이의 포위를 뚫고 나갔다. 마침 청나라 군대의 장수가 이 장면을 목격했는데, 인원도 적도 말도 많지 않아 친척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 여기고 뒤쫓지 않은 채 계속 술을 마셔 댔다. 두 사람은 포위망을 뚫고 나간 뒤 병사들을 둘로 나누어 이수성은 항주로, 이세현은 호주로 출발했다. 그러나 이수성이 항주에 당도해보니, 그곳에도 많은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우와! 정부의 군대는 정말 많구나!” 그는 한바탕 감탄을 한 후 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주먹으로 열 손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매번 공격할 때마다 격퇴되었다. 항주성 안의 수비군들은 싸우러 나오지 않고 여전히 성만 지키고 있었다. 이수성은 삼일 밤낮이 되도록 항주성을 함락시키지 못하자 초조하고 조바심이 났다.
이때,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퍼붓듯이 쏟아졌다. 성 안의 수비군들은 태평군의 인원이 얼마 되지 않자 별 볼일 없는 놈들이라 여겼다. 게다가 마침 몸이 피곤하여 졸음이 몰려오자, 모두들 보루 안으로 들어가 쉬었다. 그들은 몇 날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던 터라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잠들기 시작했다. 창밖에서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달콤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둠이 다시 찾아왔다. 이런 어둠 속에서는 많은 일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날 밤, 이수성은 천여명의 용사를 가려 뽑아 길고 긴 사다리로 성벽을 기어 올라가게 하여 안에서 성문을 열도록 했다. 성을 지키던 수비병들이 깨어났을 때, 이수성의 부대는 이미 성 안으로 돌진해 있었다. 이수성은 천경을 포위하고 있던 청나라 군대의 시선을 끌기 위해, 불을 지르도록 명령했다. 청나라 장수들은 이 소식을 듣고 항주성이 함락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식량이 모두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급히 부장 장옥량에게 명령을 내려 10만 대군을 이끌고 항주로 가서 지원하도록 했다.
홍수전은 청나라 군대가 절반이나 되는 군사들을 항주로 파견한 것을 보고 즉시 성문을 열어 반격했다. 이수성은 항주성에 불을 지른 후 곧 천경으로 돌아왔다. 이세현 역시 부대를 이끌고 천경으로 철수했다. 결국 성 안팎의 태평군이 청나라 군대를 협공하는 양상이 되었다. 비록 병사는 많지 않아도 이런 협공 자체가 적군을 초조하게 만들기 때문에 청나라의 진지 상황은 매우 어수선해졌다. 청나라 군대는 천경을 포위하는 데 주력하느라 공격할 힘을 이미 소진한 상태라 천경의 포위는 쉽게 풀렸다. 청나라 군대는 사상자가 6만여 명이나 되어 그 수가 땅을 뒤덮을 정도였다. 이것이 바로 ‘위위구조’의 비책이었고, 이 계책은 적의 약점이나 핵심을 파악하여 곧바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위위구조’와 순발력 ; 위위구조의 계책은 적의 핵심이나 약점을 순발력 있게 간파하여 공략하는 것이 열쇠다. 상대방이 시비를 걸어오거나 고의로 문제를 일으킬 때는, 항상 심혈을 기울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면 병사들에게 배불리 밥을 먹이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적의 위세가 더욱 방자해지고 기세가 맹렬해지면, 정공법은 이길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상대방의 약하고 아픈 곳을 골라 한바탕 타격을 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적이 갈피를 잡지 못하거나, 남아서 수비하는 병사들의 마음이 초조해지면, 주도권을 장악하고 우세를 차지할 수 있다.